정재열 작가는 공간에 시(詩)를 쓴다. 시는 어떤 주제나 대상에 대한 정서와 사상을 함축적이고 운율을 가진 언어로 표현하는 글이다. 작가는 그간 꾸준히 ‘기억’과 ‘관계’에 대하여 다루면서 언어 대신 시각적 요소 즉, 오브제, 텍스트 혹은 사진 이미지 등을 시어(詩語)로 삼아 삼차원의 공간 안에 배치하여 시를 시각화하는 방식의 작업을 수행해왔다. 시어가 단어 표면의 뜻을 넘어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듯, 그가 선택한 사물과 순간들의 표면적 현상 너머로 이어지는 사적인 의미들은 은유적인 형태로 작업 속에 담긴다. 그의 작업과정이 시를 쓰는 것과 유사하게 보이는 이유이다.
작가는 ‘가능성’을 자신의 중요한 작업의 태도로 삼는다. 그것은 작게는 어떤 물건의 쓰임새나 공간의 용도, 넓게는 예술의 형식이나 소통의 방법이 어떤 특정한 형태나 해석의 틀에 갇히는 것을 지양하고, 익숙한 것 이면의 의미나 가치, 쌓인 시간 등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이러한 열린 ‘가능성의 태도’를 잘 드러내는 사물이나 장면들을 시어로 선택하고, 이들의 통념적인 쓰임이나 상태, 역할을 재고하는 방식으로 다룬다. 예를 들어, 벽에 고정된 접이식 선반은 가변적으로 펼칠 수도 있고 접을 수도 있으며, 사적인 문구가 인쇄된 연필은 사용 정도에 따라 남겨지는 문구가 달라지게 되고, 쓰고 남겨진 테이프 조각이 황동으로 제작되어 반영구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열린 ‘가능성의 태도’는 정재열의 작업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공간의 이미지나 분위기를 먼저 주의 깊게 살핀 후, 자신의 작업태도를 그 공간에 맞게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물과 설치 방식을 선택한다. 공간이 그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기초작업이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실내외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 두 층의 전시공간이 유기적이면서도 상이한 분위기를 갖는 점에 주목했다고 한다. 1층은 사무실이나 전시공간과 같이 정체성이 있는 공간으로, 지하층은 물건을 적재하거나 혹은 용도가 자유로운 빈 창고 같은 분위기로 받아들였다. 작가는 두 공간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일종의 ‘관계’에 있음을 포착하고, 이를 기반으로 일상적인 사물이나 이미지를 사용하여 그가 작업 전반에 걸쳐 꾸준히 다루어 온 주제인 ‘기억’과 ‘관계’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물이 든 양동이에 걸쳐진 티셔츠에서 풍기는 향은 개인적인 기억을 자극하고, 미완의 모습으로 세워진 슬라이딩 도어는 공간을 분리하거나 연결할 수 있으며, 바닥 곳곳에 놓인 상자들은 무언가를 담거나 꺼낼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작가가 지하층에서 받은 인상을 전달한다. 한편, 1층에서 유려한 모양의 선반 위에 조심스레 중심을 잡고 있는 새 조각, 유리 화병 속에 놓인 자그마한 유리 꽃, 옆으로 누운 채 끊임없이 지난 겨울의 기억을 환기하는 스노우볼 등은 조금 더 분명하거나 완성된 감각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이렇게 작가는 미지의 것, 모호한 것, 쓸모가 없는 것,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것들을 우리가 눈여겨볼 수 있도록 물질화하여 공간 안에 놓아둔다. 그리고 이것들은 누구에게나 해당할 수 있는 보편적인 ‘관계’와 ‘기억’이 되고 곧 감상자 고유의 이야기가 된다.
정재열이 공간 안에 작품을 놓거나 작동시키는 방식은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며 은유적이다. 전시의 제목 ‘set’가 뜻하는 다중적인 의미 – 무엇을 놓거나, 짝을 이루거나, 어딘가에 자리잡거나, 어떤 것을 설정하는 등의 뜻을 생각해보면, 작가가 어떻게 이 전시에 포함된 모든 요소 즉, 작품과 공간, 언어/텍스트 그리고 감상자 사이를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엮으려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한 어떤 의도나 의미도 정확히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지양한다. 다만, 자신의 개인적 기억에서 소환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소회를 보여주는 작업들이 조심스레 놓인 두 공간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험하면서, 공간과 작품 그리고 감상자 사이에 교류하는 공감의 지점들이 전시를 완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마치 시를 읽는 이 각자가 사적이고 내밀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언어를 더듬어 가며 시어와 행간 사이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내면에 만들어가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