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은 무한히 반복되고 변주된다. 어느새 옷깃을 파고드는 쌀쌀한 바람은, 언제 끝나나 싶도록 유난히 길었던 더운 계절을 빠르게 밀어내며 선명한 겨울의 감각을 불러온다. 기대하지 않았던 이른 함박눈, 보슬한 꽃은 모두 날아가고 앙상히 남은 억새줄기, 뺨을 감싸는 찬 공기에 웅크린 어깨들, 회색 담요처럼 무겁게 내려온 하늘 아래 눈을 걱정하던 아침, 외출에서 돌아와 언 몸을 부비며 온기를 나누고, 추워진 몸과 마음을 채워내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작은 정성들. 이렇듯 겨울은 그 차가움 뒤에 포근한 따스함과 감정들을 품고 있다.
김민수는 이번 전시 《고요한 밤, 함께 부르는 노래》에서 겨울의 감각과 정서가 서로 대비되는 듯 스며드는 순간들을 담아낸다. 돌이켜보면, 매년 돌아오는 같은 계절과 시간에도 우리 겨울은 늘 조금씩 달랐던 것 같다. 김민수가 기억하는 겨울도 그러하다. 그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호젓한 동네의 산과 하천, 여러 해에 걸쳐 방문한 석모도나 최근 입주한 수원의 레지던시 주변 등 반복적으로 경험한 곳에서 느낀 온도와 감각, 다양한 경험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자신의 내적 태도가 축적되어 있다. 작가는 이렇게 몇 번에서 수십 번을 마주치고 경험한 겨울이 물리적인 감각인 차가움, 고요, 침묵, 황량함 속에서 온기, 부드러움, 잠재력, 삶의 활기를 내포함에 주목한다. 메마른 나뭇가지와 들판이 추위 속에 생명을 준비하듯, 추운 계절이 오히려 내면을 돌아보고 새해를 위한 다짐의 시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김민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하거나 소재를 채집하기보다, 무심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어느새 특별하게 자리잡은 순간들을 자연스럽게 발견한다. 이렇게 각인된 감각과 심상들은 캔버스 위에서 속도감 있지만 확고한 붓질로 드러난다.
이번 전시는 차가움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겨울의 이중적 감각을 전시장 두 층에서 다채롭게 펼쳐 보인다. 흰 물감을 커다란 화면에 손으로 찍어 바르며 그려낸 <눈 내리는 아침>이나 <고요한 밤>은 차갑지만 부드러운 눈의 감촉을 극대화하고, 이들은 <달빛> 등의 작품들과 어우러져 차갑고 고요하지만 포근하게 빛나는 겨울의 정서를 전달한다. 이와 함께 <겨울 밤>, <철새> 등 작가가 자연에서 만난 더욱 날 것 그대로의 감각에 집중한 5점의 작은 작품들은 서걱이는 계절의 온도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지하 공간이 겨울의 생생한 촉감을 전달한다면 1층 전시장은 빛과 온기가 깃든 겨울 속 일상의 풍경을 담아내며 서로 다른 감각들이 만나 교차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녹는 점>, <트리 만들기>, <꼭 안아주기>, <내 동생> 등은 계절 덕분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누군가와의 물리적인 접촉, 따뜻한 교감, 마음을 전하고 나누는 시간, 이 계절을 지내며 준비할 미래 등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의미 있는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생기와 변화의 순간들을 화면에 풀어내며, 익숙한 삶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리듬과 소소한 충만함을 새삼 발견하게 한다.
이렇게 《고요한 밤, 함께 부르는 노래》는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도 매년 다르게 다가오는 겨울의 시간과 감각을 그려낸다. 김민수의 회화적 에세이를 통해 보는 이들이 겨울에 스며든 일상의 온기를 마주하며, 고요한 밤에 담긴 감각의 울림을 함께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