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경은 주로 대형 캔버스에 주변의 삶, 소외된 삶, 보통의 풍경과 같은, 소위 비껴 간 풍경 속에 드러나는 일상의 적나라한 얼굴을 때로는 회의적으로, 때로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화면에 담아왔다. 이번 전시작들은 일상의 시름을 뒤로 하고 산책이나 여행길에서 만난 풍경을 그린 작품들과 작가의 마음속에 자리한 ‘아버지의’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소품들로, 기존의 작업들과 달리 삶의 낭만과 무게감 사이를 유유히 오가며 현실과 행복 사이의 간극을 정직하게 대면하고자 하는 작가의 내면적인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
전시장 지하 1층은 작가가 일상의 끝자락, 주변의 풍경에 주목하는 고유의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이를 조금은 다른 삶의 관점으로 바라본 풍경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집 뒤의 산책로를 오가며 스쳐간 사람들에게서 느낀 숨과 바람(<두 갈래 길, 밤의 템포>, <밤의 템포>), 마치 봄꽃처럼 매달려 있던 한겨울의 마른 단풍잎과 그늘 아래 낙엽을 쓸어 모으는 노인의 인상(<오후 그림자 사이로 낙엽 모으는 사람>), 정읍, 진도 등 지방 소도시 외곽에서 만난 비루하기도 서정적이기도 한 풍경들(<차창 밖, 겨울 능선>, <나무하늘 물그림자> 등). 고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얇고 섬세하게 물감을 올리는 기법은 각 풍경화들에 마치 엷은 대기가 서린 듯 보이게 하는데, 이는 보는 이들이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혹은 주목받지 못하는 풍경들 속에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과 그러한 삶 나름의 여운을 읽어내게 한다.
한편 1층 전시장에는 기존에 작업에서 다루어 온 대상이나 그려오던 화면의 크기, 기법과 다른 양상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고목>, <봄의 정원> 등은 작가가 흔한 작은 텃밭의 들풀이나 그다지 눈길 줄 일 없는 꽃밭의 모퉁이 등을 보았을 때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아버지의 정원에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다. 작가의 마음 속에 자리한 이 정원은 구체적인 모습을 띠기보다, 개발의 뒤안길에 있는 고향에서 그래도 열심으로 밭과 나무를 가꾸던 마음처럼, 특별할 것 없는 곳에서도 그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개념적인 장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원을 발견하는 시선으로 그려낸 수풀과 꽃, 나무의 모습들은 기존의 엷고 섬세한 표현과 달리 물감과 붓질의 물성이 좀 더 드러나는 실험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작가는 동네의 평범한 낮 풍경이나
(<동네 한 바퀴, 강아지 산책>), 고향 가는 길에 만난 정경(<고향>), 우연히 마주친 동네 아이의 동세(<무지개 타는 아이>) 등 별 것 없는 일상의 한 켠을 담담하면서도 진심 어린 붓질로 보듬어 그려낸다.
최은경은 이번 전시에서 일상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삶의 낭만과 여운, 그리고 동시에 그 끝자락의 일상이 넌지시 던지는 삶의 무게감 사이를 조금은 멀찍이, 그러나 관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그의 발길이 닿는 곳 주변의 삶과 비껴간 풍경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은유한다. 이 전시를 통해 일상과 비일상, 풍경과 비풍경이 공존하는 삶의 구석과 틈새 사이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방향을 성찰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