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나의 작업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사소하고 평범한, 대체로 시선을 오래 두지 않고 지나치게 되는 어떤 사물이나 장면들이다. 매일 아침 준비하는 과일, 수퍼마켓 앞 플라스틱 의자, 자주 가는 카페의 테이크아웃 커피컵, 산책길에 종종 만나는 고양이 혹은 새, 늘 다니는 건널목 위 신호등, 화병에 꽤 오랫동안 꽂아 둔 꽃다발.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오랜 시간을 마주했기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진 존재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렇게 익숙해서 재미없거나, 쓸모 없거나,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기 마련인 대상들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다가오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테이크아웃컵은 나의 하루를 함께한 동행자가 되고, 흔한 플라스틱 의자는 가볍고 싸구려지만 수퍼마켓을 찾는 사람들에게 넉넉한 쉴 자리가 되며, 선물 받은 꽃다발이 시들어가는 동안에도 받은 이의 마음은 여전히 포근하고, 신호등과 안전콘은 눈여겨 보는 사람 하나 없어도 늘 제 몫을 충실히 해내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지난 첫 개인전 <느린 땅을 밟는 빠른 발>에서 유해나는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놀이터와 모래바닥, 놀이기구, 아이같은 표정의 인물 등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의 속도에 맞추다 지나쳐버린 과거의 시간을 환기하는 소재들을 통해 현재를 되짚어보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조금 더 현재에 집중하여, 끊임없이 흘러 과거가 되고 있는 매일의 이 순간을 기록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작가는 보통의 날에 발견하는 보석같은 순간들과 의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고 메모를 남기며 일기를 쓰듯 그림을 그린다. 일기는 주로 글을 통해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고 그 날의 의미, 주관적 생각, 감정 등을 되새겨보는 일이다. 또한 기록된 과거를 통해 현재를 가늠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유해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지나가거나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현재의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들에 시선을 두고 그 나름의 가치를 박제하듯 화면에 담아 놓는 것이다. 또한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나날과 사물들에도 매번 다르게 빛나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는 대수롭지 않은 사물과 풍경들이 화면 한가운데 주인공이 되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렇게 화면 속 주인공이 된 대상들은 이들이 놓인 환경이나 맥락과 상관없이 유난히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있다. 이들이 비록 말랑하고 부드럽게 표현되었지만 곧 깨어질 것 같은 연약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세상과 삶을 대하는 작가 특유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노력하는 모든 땀방울은 헛되지 않고, 보잘것 없는 작은 것들에도 각자의 몫과 이유가 있으며, 정작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임을 인정하는 단단한 마음 말이다.
마치 한 권의 책 혹은 일기를 펼쳐 놓은 듯한 이번 전시작들을 산책하듯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나간 과거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내 눈 앞의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려는 노력과, 있는 그대로의 자리에서 온기를 품고 나를 지켜주고 있던 것들, 평범한 하루 중 내 곁과 시간을 공유하는 이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비로소 삶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소하고 늘 곁에 있는 것에서 가치와 기쁨, 행복을 발견할 때 나의 평범한 매일을 선물처럼 여길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