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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열: set

Jae Youl Jeoung: set

05/31-07/13/2024


정재열 작가는 공간에 시(詩)를 쓴다. 시는 어떤 주제나 대상에 대한 정서와 사상을 함축적이고 운율을 가진 언어로 표현하는 글이다. 작가는 언어 대신 시각적 요소 즉, 오브제, 텍스트 혹은 사진 이미지 등을 시어(詩語)로 삼아 삼차원의 공간 안에 세심하게 배치하여 시를 시각화하는 방식의 작업을 수행해왔다. 시어가 단어 표면의 뜻을 넘어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듯, 작가는 그가 선택한 사물과 순간들의 표면적 현상 너머로 이어지는 어떤 의미들을 포착하고 작업 속에 담아낸다. 그의 작업과정이 시를 쓰는 것과 유사하게 보이는 이유이다. 


작가는 ‘가능성’을 자신의 중요한 작업의 태도로 삼는다. 그것은 작게는 어떤 물건의 쓰임새나 공간의 용도, 더 넓게는 예술의 형식이나 소통의 방법이 어떤 특정한 형태나 해석의 틀에 갇히는 것을 지양하고, 보이는 것 혹은 익숙한 것 이면의 의미나 가치, 쌓인 시간 등을 발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는 개인적인 경험이나 기억, 감각을 바탕으로 이러한 열린 가능성의 태도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사물이나 장면들을 시어로 선택한다. 이들은 대게 미지의 것, 모호한 것, 쓸모가 없는 것,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것 등의 형태를 띠는데, 작가는 이들의 통념적인 쓰임이나 상태, 역할을 재고하게 하는 방식으로 다룬다. 예를 들어, 벽에 고정된 접이식 책상은 가변적으로 펼칠 수도 있고 접을 수도 있으며, 사적인 문구가 인쇄된 연필은 사용함에 따라 문구가 점점 사라질 수도 있고, 쉽게 구겨져 버려질 수 있는 테이프 조각이 황동으로 제작되어 반영구적인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열린 ‘가능성의 태도’는 정재열이 작업의 대상을 선택하고 공간 속에 배치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가는 공간의 이미지나 분위기를 먼저 주의 깊게 살핀 후, ‘가능성의 태도’를 그 공간에 맞게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물과 설치 방식을 선택한다. 공간이 그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기초작업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오에이오에이의 전시공간을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임대공간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1층은 좀 더 사무실이나 전시공간 같은 임대 장소로, 지하층은 임대공간에  필요하거나 사용되는 물품들을 보관하는 창고의 분위기로 인식했다. 작가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상이한 분위기를 갖는 두 공간을 각각 어떤 연출을 위한 세트장의 전면과 뒷면으로 가정한다. 물이 있는 양동이에 반쯤 걸쳐진 흰 티셔츠, 공간의 애매한 위치에 설치된 슬라이딩 도어, 접거나 펼칠 수 있는 접이식 선반, 전구가 담겨있던 택배 상자 속을 비추는 전구의 불빛 등 작가는 아직은 해체되어 있고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이전,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작품들을 배치하여 지하를 무대의 뒷공간으로 연출한다. 반면, 1층은 기념품 가게 선반에 놓인 듯한 스노우볼, 커다란 유리 화병 속에 들어가 있는 자그마한 유리 꽃, 가구 모서리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새 조각, 얇은 표면에 하늘을 담고 오롯이 서 있는 종이봉투 등 형태나 설치방식이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완성된 모습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정재열이 공간 안에 작품을 놓거나 작동시키는 방식은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며 은유적이고 간접적이다. 전시의 제목 ‘set’가 뜻하는 다중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작가의 의도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한 어떤 의도나 의미도 정확히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만,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에서 소환한, 보편적인 인간의 일상적 행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조심스레 놓인 두 공간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험하면서, 공간과 작품 그리고 감상자 사이에 교류하는 공감의 지점들이 전시를 완성하기를 바랄 뿐이다. 마치 시를 읽는 이 각자가 사적이고 내밀한 경험과 기억, 그리고 언어를 더듬어 가며 시어와 행간 사이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와 감상을 내면에 만들어가듯이 말이다.

About Artist

정재열(b.1992)은 2018년 런던의 Chelsea College of Arts에서 수학한 이래, 다양한 문자로 된 언어 대신 공간을 탐색하고 설치작업과 조각 등을 그 공간에 배치하여 시(時)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또한 대만의 众艺术Zone Art, 포르투갈의 DE LICEIRAS 18, 일본의 Studio Kura 등 여러 국가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소통의 방식을 탐구해왔다. 주요 개인전으로 2023년 <Memory Foam>(众艺术 Zone Art, 타오위안, 대만), <”   “>(공간 형, 서울), 2022년 <Windows walls and the room>(WWW SPACE, 서울) 등이 있으며 참여한 그룹전으로 2023년 <Uncertain Neighbours>(A Certain Café, 포르투, 포르투갈), 2022년 <Image Tracking>(전시공간, 서울), <형이하의 다이버전스 Ep. 1: Counter – Memory>(공간 형, 서울) 등이 있다. (https://column.creatorlink.net / @anunfinished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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